자소서에서 '성장'이라는 단어를 지워 보면 생기는 일

성장, 열정, 소통, 도전. 이 단어들이 나오는 자리에는 대체로 구체적인 내용이 없습니다.

해봄·

자소서 첨삭 도구를 만들면서 여러 자기소개서를 읽게 됐습니다. 그러다 하나 눈에 들어온 게 있습니다. 어떤 단어들은 등장하는 자리마다 그 뒤에 내용이 없습니다. 성장, 열정, 소통, 도전, 책임감. 이 단어가 나오면 그 문장은 대개 주장만 있고 근거가 없습니다.

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 단어들이 사실상 "여기는 아직 안 썼습니다"라는 표시로 보입니다.

실험 하나

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. 자소서를 열고 아래 단어를 전부 지워 보세요.

  • 성장
  • 열정
  • 소통
  • 도전
  • 책임감
  • 노력
  • 배움

지우고 나서 문장이 성립하면 그 단어는 원래 필요 없던 것입니다. 문장이 무너지면 그 자리에 뭔가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가야 했다는 뜻입니다.

"이 경험을 통해 크게 성장했습니다"에서 성장을 지우면 "이 경험을 통해 크게 했습니다"가 됩니다. 무너집니다. 그러면 질문이 생깁니다.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? 그 답이 원래 여기 있어야 했던 문장입니다.

왜 이 단어들이 자꾸 나오나

쓰는 사람 잘못이라기보다 구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.

첫째, 자소서 문항 자체가 이 단어들을 씁니다. "성장 경험을 기술하시오"라고 물으면 답에 성장이 들어가는 게 자연스럽습니다. 하지만 문항의 단어를 답에 그대로 쓰면 읽는 쪽에는 아무 정보가 없습니다.

둘째, 이 단어들은 결론처럼 보입니다. 경험을 쭉 쓰고 마지막에 "이를 통해 성장했습니다"라고 붙이면 글이 끝난 느낌이 납니다. 실제로는 결론이 아니라 결론을 쓰지 않은 것입니다.

셋째, 구체적으로 쓰면 반박당할 것 같은 불안이 있습니다. "매출이 12% 늘었다"고 쓰면 그게 본인 기여인지 물어볼 것 같고, "성장했다"고 쓰면 안전해 보입니다. 하지만 안전한 문장은 기억에도 남지 않습니다.

바꾸는 방법

지운 자리에 넣을 것은 대체로 세 가지 중 하나입니다.

지운 단어대신 넣을 것
성장했다전에는 못 하던 무엇을 할 수 있게 됐는지
열정이 있다시키지 않았는데 한 일이 무엇인지
소통을 잘한다의견이 갈렸을 때 어떻게 정리했는지
책임감이 강하다맡은 일이 어려워졌을 때 무엇을 했는지

오른쪽은 전부 사실입니다. 형용사가 아닙니다. 그래서 반박당할 수 있지만, 반박당할 수 있다는 건 정보가 있다는 뜻입니다. 면접에서 그 부분을 물어보면 그건 관심이 있다는 신호입니다.

한 가지 예외

이 단어들이 나쁜 게 아닙니다. 근거 뒤에 오면 괜찮습니다. "이 과정에서 데이터 검증 절차를 처음 만들었고, 이후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았습니다. 이 경험이 제게는 성장이었습니다." 이건 됩니다. 성장이라는 단어가 앞 문장을 요약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.

문제는 근거 없이 단어만 있을 때입니다. 순서를 바꾸면 됩니다. 사실을 먼저, 단어는 나중에. 또는 단어는 아예 빼도 됩니다. 사실이 충분하면 읽는 사람이 알아서 그 단어를 떠올립니다.

자소서 첨삭 해봄은 이런 문장을 찾아서 짚어 줍니다. 다만 도구가 찾아 주는 것보다 위의 실험을 직접 해 보는 편이 오래 남습니다. 한 번 해 보면 다음 자소서부터는 쓰면서 걸러집니다.

이 글은 해봄 운영자가 직접 도구를 만들고 운영하며 확인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. 사실이 아닌 부분을 발견하시면 알려 주세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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